장학재단 소개

손태희 장학재단을 소개합니다.



설립자 손태희는 어떤 분인가
설립자는 황해도 연백이 고향으로  6.25의 참화가 계속되던 1952년 연백군수이던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가자 6남매와 함께 피란민의 대열에 끼여 남하했다. 
이곳저곳의 수용소를 떠돌다 1954년 전라북도 이리(현재 익산)에 정착했다. 피란민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화덕에 불을 지피고 오물 치우기 등 이런저런 청소를 도맡아 했던 10대의 이 소년을 당시 남성중·고등학교 백남규 교장이 보고 기특히 여겨 학교 사환(교무도우미)으로 채용하였다.
백 교장은 “배우는 데는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후회된다.” 하며 학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낮에는 학교 사환(교무도우미)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남성2부)에 다녔다. 사환(교무도우미)이 하는 일은 수업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타종과 교무실의 잔심부름 등이었다. 이것이 남성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가 되었고 백 교장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미리 알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점점 교직원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고교 때에 주간으로 편입하여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경제적인 가난으로 학창 시절 양조장에서 막일을 하기도 하고 풀죽이나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가 하면, 학교 점심시간에는 친구들의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이때 도움을 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졸업 후 어려운 가운데서도 삶의 의지와 성공에 대한 집념 그리고 향학열을 불태워 건국대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물론 병역은 3년 만기를 채우고 제대했다. 제대후에는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주)신필름’ 경리부장, ‘(주)성림흥업’ 상무이사, ‘(주)하나실업’ 대표이사 등 기업인으로서 경험과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갔다.
그러던 중 1973년 수원에 아주 희귀한 ‘안티몬’을 제조하는 ‘일성안티몬’ 회사를 설립하였다. ‘안티몬’은 비행기 유리 등 특수유리, 고급섬유, 대포의 포신 제조에 사용되는 첨단 산업용 혼합첨가제로서 금, 은, 망간, 티타늄 등과 같은 희귀 금속이다. 안티몬 제조회사는 세계적으로 19곳밖에 없어서 설립자가 국산화에 성공하기 전에는 안티몬은 전량 수입되었다.안티몬을 만드는 광석은 중국에서 70%가 생산되지만 손태희 설립자는 태국산 광석을 수입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는 안티몬을 분말로 만드는 데 성공하여 당시 톤당 1만2천 달러에 수입되던 것을 톤당 4천 달러로 가격을 인하하였다. 사업은 번창 일로를 달려 안티몬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는 성공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1986년에는 800만 달러 수출 실적을 올려 그 공로가 인정되어 정부로부터 제23회 수출의 날에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외국으로부터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1988년에는 수출고 1,000만 달러를 넘어서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학창 시절 고학으로 어렵게 보냈던 설립자는 일성안티몬의 전체 종사원 자녀들에게는 초등학교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의 학자금 전액을 회사가 지원하는 복지제도를 시행하였다.
사업이 번창하고 기업인으로 성공하였을 때 모교인 남성학원은 캠퍼스 이전에 따른 비용 등 재정 악화와 이사장의 공백으로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이사장 대행 및 동창회 임원, 동문들의 학교를 맡아 운영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과 청원이 있어도 기업인으로서 육영사업은 거리감이 있어 내내 고사하였다. 그러나 학교에 대한 인연과 고마운 마음이 있었던 설립자는 동문들의 지속적인 요청을 수락하고 1989.11.25.일 학교법인 남성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취임 후 학교의 부채 86억원을 정리하고 6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여 교내에 남아 있던 공유지 및 사유지를 매입하였으며, 22억원을 출연하여 우리나라 최초 기숙사 건립 및 교육시설 개선과 조경사업 등 획기적인 교육환경 개선을 통해 학생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쾌적한 배움터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명문사학 “학교법인 남성학원”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또한 학교의 자립기반 마련을 위하여 자회사인 ㈜IS테크 주식 10만주, 액면가 68억 5천만원을 남성학원에 기증하여 학교재정을 굳건히 다졌으며, 몸소 헌신적인 교육사랑을 실천하고자 경제적인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국가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자 사재 100억원을 출연하여 2011년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시작하였다.
장학사업은 2011년부터 13년간 학교법인 남성학원 산하 학교인 남성중‧이리남성여중‧남성고‧이리남성여고 학생 3천명에게 30여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설립자는 한발 더 나아가 남성학원 산하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수혜자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전국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양성에 앞장서며 교육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설립자 손태희는 어떤 분인가

설립자는 황해도 연백이 고향으로  6.25의 참화가 계속되던 1952년 연백군수이던 아버지가 북으로 끌려가자 6남매와 함께 피란민의 대열에 끼여 남하했다. 
이곳저곳의 수용소를 떠돌다 1954년 전라북도 이리(현재 익산)에 정착했다. 피란민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화덕에 불을 지피고 오물 치우기 등 이런저런 청소를 도맡아 했던 10대의 이 소년을 당시 남성중·고등학교 백남규 교장이 보고 기특히 여겨 학교에서 일하도록 하였다.
백 교장은 “배우는 데는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후회된다.” 하며 학업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낮에는 학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남성2부)에 다녔다.  이것이 남성학교와 인연을 맺게 된 동기가 되었고 백 교장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미리 알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점점 교직원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고교 때에 주간으로 편입하여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경제적인 가난으로 학창 시절 양조장에서 막일을 하기도 하고 풀죽이나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가 하면, 학교 점심시간에는 친구들의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이때 도움을 준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졸업 후 어려운 가운데서도 삶의 의지와 성공에 대한 집념 그리고 향학열을 불태워 건국대학교 상과를 졸업했다. 물론 병역은 3년 만기를 채우고 제대했다. 제대후에는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주)신필름’ 경리부장, ‘(주)성림흥업’ 상무이사, ‘(주)하나실업’ 대표이사 등 기업인으로서 경험과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갔다.
그러던 중 1973년 수원에 아주 희귀한 ‘안티몬’을 제조하는 ‘일성안티몬’ 회사를 설립하였다. ‘안티몬’은 비행기 유리 등 특수유리, 고급섬유, 대포의 포신 제조에 사용되는 첨단 산업용 혼합첨가제로서 금, 은, 망간, 티타늄 등과 같은 희귀 금속이다. 안티몬 제조회사는 세계적으로 19곳밖에 없어서 설립자가 국산화에 성공하기 전에는 안티몬은 전량 수입되었다.안티몬을 만드는 광석은 중국에서 70%가 생산되지만 손태희 설립자는 태국산 광석을 수입하고, 까다로운 공정을 거치는 안티몬을 분말로 만드는 데 성공하여 당시 톤당 1만2천 달러에 수입되던 것을 톤당 4천 달러로 가격을 인하하였다. 사업은 번창 일로를 달려 안티몬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이는 성공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1986년에는 800만 달러 수출 실적을 올려 그 공로가 인정되어 정부로부터 제23회 수출의 날에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외국으로부터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1988년에는 수출고 1,000만 달러를 넘어서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학창 시절 고학으로 어렵게 보냈던 설립자는 일성안티몬의 전체 종사원 자녀들에게는 초등학교에서 대학 졸업 때까지의 학자금 전액을 회사가 지원하는 복지제도를 시행하였다.
사업이 번창하고 기업인으로 성공하였을 때 모교인 남성학원은 캠퍼스 이전에 따른 비용 등 재정 악화와 이사장의 공백으로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이사장 대행 및 동창회 임원, 동문들의 학교를 맡아 운영해 달라는 간곡한 요청과 청원이 있어도 기업인으로서 육영사업은 거리감이 있어 내내 고사하였다. 그러나 학교에 대한 인연과 고마운 마음이 있었던 설립자는 동문들의 지속적인 요청을 수락하고 1989.11.25.일 학교법인 남성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취임 후 학교의 부채 86억원을 정리하고 6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여 교내에 남아 있던 공유지 및 사유지를 매입하였으며, 22억원을 출연하여 우리나라 최초 기숙사 건립 및 교육시설 개선과 조경사업 등 획기적인 교육환경 개선을 통해 학생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쾌적한 배움터 조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명문사학 “학교법인 남성학원”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또한 학교의 자립기반 마련을 위하여 자회사인 ㈜IS테크 주식 10만주, 액면가 68억 5천만원을 남성학원에 기증하여 학교재정을 굳건히 다졌으며, 몸소 헌신적인 교육사랑을 실천하고자 경제적인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국가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자 사재 100억원을 출연하여 2011년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장학사업을 시작하였다.

장학사업은 2011년부터 13년간 학교법인 남성학원 산하 학교인 남성중‧이리남성여중‧남성고‧이리남성여고 학생 3천명에게 30여억원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설립자는 한발 더 나아가 남성학원 산하 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수혜자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전국에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양성에 앞장서며 교육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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